그때 엄마 아빠랑 놀이공원에 갔던 거 기억나.” “엄마가 전에 이렇게 말했잖아.”엄마라면 한 번쯤은 아이가 어려서 기억 못할 거라 여겼던 일을 떠올릴 때 정말인가 싶어 의심(!)을 품은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의 머릿속에는 언제부터 ‘기억’이 존재할까?
기억은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원초적인 요소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대부분 일이 모두 두뇌의 기억과 관련이 있다. 아이가 부모를 알아보는 것,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것, 다리를 교차하며 걷고 손을 움직이는 것까지 모두 뇌가 기억해 일어나는 일인 까닭이다. 감정도 마찬가지. 기쁨과 즐거움, 고통, 부끄러움 등은 모두 기억이 있어야 가능하다. 기억력은 아이의 뇌가 형성되는 태아기부터 발달하기 시작한다. 출생 직후 엄마나 아빠의 목소리에 반응한다는 것은 부모의 목소리를 기억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아이의 기억력은 ‘모방’이다. 부모가 아이 앞에서 한 행동을 몇 시간이 지난 후 아이가 따라하거나 부모의 행동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는 기억력에 의한 것이다. 대개 생후 8~9개월부터 가능하며, 언어 능력이 갖춰지고 자신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는 만 2세 이후가 되면 아이의 기억력은 폭발적으로 확장된다. 전문가들이 기억력 시작 시기를 만 2세로 꼽는 이유 중 하나는 ‘대상영속성’에 대한 개념 때문이다. 대상영속성은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 용어 중 하나로 눈앞에 보이던 사물이 갑자기 사라져도 그 사물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걸 뜻한다. 그런데 이 대상영속성 개념을 발달시키려면 아이는 두 가지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주변의 세계와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 또 주변의 물체가 눈 앞에서 사라져도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모두 인지해야 가능하다. 만 2세 무렵은 이 두 가지 사고를 할 수 있어 기억력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다.
기억이 이뤄지는 과정
기억은 뇌 속의 여러 세포가 복합적인 작용을 해야 한다. 뇌는 4개의 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눈으로 본 것은 후두엽, 냄새는 측두엽, 촉감은 두정엽으로 전해지고 이 정보는 모두 전두엽으로 모인다. 전두엽은 정보를 종합해 해당 기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계획한다. 4개의 엽이 정보를 장기로 기억하는 역할을 한다면 1차로 정보를 기억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측두엽 안쪽에 위치한 ‘해마’가 담당한다. 해마에서 정보의 중요도를 판단해 우선순위를 두고 감각기억으로 사라지게 만들거나 단기기억 또는 장기기억으로 나누어 저장한다. 단기기억은 잠깐 동안 정보가 보존되는 것으로 시냅스 회로가 짧게 활성화된 상태다. 그 즉시는 기억할 수 있지만 며칠이 지난 후에는 기억하지 못한다. 장기기억은 비교적 오랫동안 저장되는 기억으로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장기기억은 ‘외현기억’과 ‘암묵적기억’으로 나뉜다. 외현기억은 여행지에서 가족들과 무엇을 했는지 등 주로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 지식을 회상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암묵적기억은 일종의 무의식적 기억으로서 이전의 경험이 의식으로 남지는 않았으나 이후의 과제 수행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다. 자전거 타는 연습을 통해 능숙하게 타게 되면 다음에 다시 탈 때 의식적으로 일일이 기억하지 않아도 저절로 잘 타게 되는 것, 젓가락질이나 수영, 악기를 배워두면 나중에 잊어버리지 않는 것도 이러한 암묵적 기억 능력 때문이다.
TIP 만 2세 이전 아이는 전혀 기억을 못할까?
단기기억이나 감각기억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린 시기에도 존재한다. 20초도 안 되는 짧은 기억은 생후 4개월부터, 30초 이상 되는 단기기억은 8개월 무렵부터 가능하다. 돌이 지나면 기억 능력이 좀 더 발달하고 만 2세에는 일주일 이상, 만 3세는 수개월 등으로 시간이 점차 길어진다. 아이의 기억력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특히 인상 깊었던 일 또는 강렬한 감정이 동반되었던 기억은 매우 오랫동안 지속된다. 부모와 함께하면서 즐거웠던 경험뿐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도 오래 기억되는 것. 부정적인 경험의 기억은 종종 왜곡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아이 스스로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라 보기도 한다. |
Brain Up! 아이의 기억력 높이는 방법
1 반복하라
뇌는 반복되는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대뇌 피질에는 항상 많은 정보가 들어와 기억할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때 짧은 간격으로 같은 정보를 자꾸 반복하면 유리하다.
2 소리를 내라
뇌는 소리를 좋아해 ‘귀로 들리는 언어’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인간의 뇌는 말하는 기능에 맞춰 진화되어 왔으므로 장기기억으로 저장하고 싶은 숫자나 이름 등은 다시 한 번 귀에 들리도록 되뇌면 도움이 된다.
3 다양한 감각을 동원하라
뇌로 입력되는 정보가 시각·촉각·청각으로 동시에 들어오면 뇌는 이것을 ‘강조’한다고 여긴다. 여러 감각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대뇌피질의 여러 부위를 활성화시키고 전두엽은 여러 감각이 동시에 보고한 정보에 우선순위를 둔다.
4 감정을 담아라
기억 장소로 불리는 해마는 감정과 정서를 담당하는 변연계의 일부다. 해마 바로 옆에는 편도체가 자리하는데 기쁨, 슬픔, 두려움, 노여움, 즐거움 등 감정을 담당한다. 해마로 들어오는 정보의 대부분이 편도체를 거치므로 감정과 정서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것. 감정을 덧입은 정보는 뇌가 훨씬 더 잘 기억한다.
5 스토리를 만들어라
짧은 이야기, 한 장면에 기억되는 이미지 등 아이가 스토리를 만들 수 있게 도와준다. 정보를 가공해 짧은 이야기를 만들거나 머릿속에 익숙한 장면 곳곳에 정보를 배치하면 더 쉽게 기억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