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6개월 무렵 시작하는 낯가림은 애착 형성의 척도다. 익숙함과 낯섦을 구별한다는 뜻이며, 비로소 ‘좋다’와 ‘싫다’를 표현할 줄 안다는 의미다. 때론 부모를 힘들게 하지만, 낯가림은 언제나 옳다.
낯가림, 관계를 배우는 출발점
“오랜만에 시댁 식구를 만났는데, 아이가 할머니 품에 안기자마자 울어버리더라고요. 시어머니 보기가 어찌나 민망하던지….” 이제 갓 뒤집기를 시작한 7개월 민경이의 엄마는 갑자기 찾아온 아이의 낯가림이 당황스럽다. ‘그래도 키워준 엄마는 알아보는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 한편으로 ‘낯가림이 더 심해지면 어쩌지?’ 하고 고민되는 것도 사실이다.
생후 6~7개월 무렵 시작하는 아이의 낯가림은 익숙지 않은 사람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타자와 관계를 맺는데, 관계의 한가운데에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조금 덜 중요한 사람들이 위치한다. 가족과 같이 처음부터 동심원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동심원의 가장 바깥쪽에 있다가 시간과 추억이 쌓임에 따라 중심과 가까운 위치로 이동한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을 동심원의 어느 위치쯤에 놓아야 할지 자연스럽게 결정한다. 그리고 낯가림은 이런 사람과의 관계를 배우는 기초 단계다.
낯가림의 발달 단계는 아이의 얼굴 지각 능력과 관련 있다. 아이의 시각 체계는 생후 12개월 내에 빠르게 발달하는데, 생후 2~3개월 정도 되면 타인의 얼굴을 지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무렵부터는 친숙한 얼굴에 주의를 기울이며 미소를 짓고, ‘앗! 엄마다’라며 엄마와 다른 사람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다. 생후 6개월이 지나면 슬픈 표정, 기쁜 표정 등도 구별해 사회적·정서적 정보를 얻으면서 사회성을 발달시킨다. 한마디로 낯가림은 상대를 경험하기 전, 첫인상만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결정한 아이의 감정 표현이다. 생후 24개월 전후가 되면 아이는 이전과 달리 경험으로 상대방에 대한 선호도를 결정한다. 하지만 생후 6개월 전후라 해도 낯선 사람이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따뜻하게 대해주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을 점차 늘리면, 아이는 낯선 사람과도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낯가림은 친숙한 사람과 아닌 사람,안전한 사람과 아직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내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싫어요’가 아닌 ‘무서워요’
어둑어둑한 골목길에서 갑자기 낯선 사람과 마주쳤다고 상상해보자. 다 큰 어른조차 ‘저 사람이 나를 해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두려움과 경계심이 생긴다. 그때의 감정이 바로 아이가 낯가림할 때의 심리 상태다. 아이는 익숙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자신을 해칠 것 같다는 근본적인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 성격이 까다롭거나 상대방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낯선 사람은 아이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아이는 부모가 어떻게 해주기를 원할까? 아이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부모가 자신의 두려움과 경계심을 없애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엄마는 “괜찮아. 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예뻐하는데” 또는 “이모한테 가서 한번 안겨봐”라며 아이가 낯선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도록 여러 방법을 급하게 동원한다.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고 느끼는 아이의 마음을 엄마가 어루만져주기는커녕 쭈뼛거리는 아이에게 무언가 행동하기를 요구하면, 아이는 두려움이 가중되어 그 경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또다시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시간’에 있다. 엄마는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가 두려움을 천천히 해소할 때까지 이해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낯가림 단계
1. 3개월 · 엄마를 알아본다
항상 돌봐주는 엄마를 기억해 알아보고,안정감을 느낀다. 특히 엄마의 스킨십은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어 성격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2. 6개월 · 낯가림을 시작한다
사람을 확실하게 구별해 낯익은 사람을 보면 웃지만, 낯선 사람을 보면 울거나 엄마에게 가려하는 등 본격적인 낯가림을 시작한다. 주 양육자에게 집착하고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며,새로운 상황에서 억제된 행동을 한다.
3. 8개월 ·주변을 살핀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이 안으려 하면 울음을 그치지 않거나 계속적으로 보채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 시기엔 잠시 울다가 주변을 살피고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지각이 생겼다는 의미다.
4. 12개월 · 자주 보는 이를 알아본다
기억력이 발달해 자주 보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으며 만난지 2~3일이 지나도 얼굴을 잊지 않는다. 낯선 사람을 보면 수줍어하는 등의 낯가림은 여전하지만 이전보다 그 정도는 약하며, 아이 성격에 따라 차이가 크다.
5.18~24개월 · 낯가림의 끝
활발한 활동만큼이나 호기심이 커지는 월령이다. 낯가림 시기가 지나 주위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해 같은 또래를 보면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