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교육은 최대한 천천히, 즐겁게!
아이에게 악기 교육을 시킬까 고민한다면 혹시나 하는 기대와 조금만 가르치면 잘할 것 같은 부모의 욕심, 내 아이만 뒤처질까 염려하는 불안감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악기 교육은 음악교육에 포함된다. 음악교육은 소리와 관련한 모든 활동을 포함하는 것으로 청음 훈련, 즉흥 연주, 독보 훈련, 기보 훈련 등이 있다. 악보와 악기를 함께 활용하는 독보 훈련과 기보 훈련은 악기 레슨, 즉 좁은 의미의 악기 교육이다.
김 교수는 성공적인 악기 교육의 요건은 나이와 악기, 책임감이라고 말한다. 생물학적 숫자를 떠나 신체 발달과 인지능력이 잘 갖춰져 있을 때 시작해야 한다.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할 때 부모가 선택한 악기가 아닌 직접 고른 악기를 가르쳐야 배우다가 힘들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악기는 하루아침에 뚝딱 배울 수 없기 때문에 배우는 과정이 즐거워야 해요. 아이의 인지능력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하죠. 즉, 한글도 모르는 아이에게 악보를 보여주고 진도만 나가면 아이는 흥미를 느끼지 못해 버거워할 뿐 아니라 결국 음악까지 싫어하게 될 수 있어요.”
큰딸 소연이는 악기 다루는 것을 좋아한다. 2년 동안 학원에서 배운 피아노, 방과 후 수업으로 배운 플루트, 독학으로 익힌 색소폰까지 다룰 수 있는 악기가 꽤 많다. 사람들은 소연이가 어릴 때부터 악기를 배웠을 거라 생각하는데 초등학교 입학 전에 발레 학원을 잠깐 다닌 것 말고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실컷 뛰어놀게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한 피아노를 가르쳤을 뿐이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너무 빠른 속도로 피아노를 배워 일주일마다 새 교재를 사 줬어요. 인지능력이 충분할 때 레슨을 시작했더니 이해가 빨랐던 거죠. 아이 스스로 ‘나는 피아노를 잘 쳐’, 나는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배우고 잘 이해해’라고 생각하니 자신감도 커지더라고요. 다른 분야에도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게 되었고요.”
소연이는 요즘도 공부하다 잠깐 쉴 때면 피아노를 치다가 플루트도 불고 또 어떤 날은 색소폰을 불기도 한다. 지금은 악기 레슨을 따로 받고 있진 않지만 클래식, 영화음악 등의 선율을 연주하는 아이를 보면 덩달아 행복해진다.
막내딸 하연이 역시 음악을 좋아한다. 피아노와 우쿨렐레를 다룰 수 있고 간단한 악보를 그려놓고 연주도 할 줄 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직접 지은 곡을 들려줘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단순히 악보를 따라 그리는 수준을 넘어 본인의 감정을 담아 창작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작곡한 노래를 들으니 3분의 4박자의 경쾌한 멜로디에서 입학을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연주하는 아이의 얼굴에는 성취감과 뿌듯함이 가득했죠. 제가 만약 ‘하연아, 작곡도 해보고 악보도 그려볼래?’ 했다면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즐겁게 몰입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물이죠. ‘높은음자리표는 G음(솔) 여기서부터 그려’, ‘이 부분은 틀렸어’ 하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할 필요는 없어요. 그저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 감동의 표현만 해주면 돼요.”
좋은 음악을 찾아 들려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놀이를 하고 다양한 악기를 탐색하는 모두 다 훌륭한 음악교육이다. 음악을 온몸으로 느낄 줄 아는 아이는 스스로 행복한 인생을 만들 수 있다.
음악은 배움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두 딸과 달리 아들 진우는 본인이 원하지 않아 지금까지 아무 악기도 배우지 않고 있다. 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리코더가 전부다. 아들이라 악기를 가르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언제든 가르칠 수 있으니 여유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본인이 배우고 싶어 하는 악기도 없고 의지도 없기 때문에 굳이 강요하지 않고 있다. 누나와 여동생, 엄마 아빠가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를 자주 들으니 청음 훈련은 충분히 받는 셈이다. 요즘 부쩍 음악책에 실린 곡을 리코더로 연주하거나 피아노 앞에 앉아서 오른손만으로 멜로디를 쳐보기도 한다.
“악기 교육을 받는다고 음악 지능이 개발되는 것은 아니에요.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가족과 함께 음악을 듣고 다양한 악기를 탐색하는 것이 다 음악교육이죠. 진우에게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음악교육을 접하게 하고 있어요. 가족이 함께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보더니 최근에는 클라리넷에 관심이 생겨 배워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김 교수는 아이가 도통 악기에 관심이 없다면 억지로 가르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 시간에 아이가 좋아하는 다른 활동을 하게 해주는 편이 훨씬 낫다. 엄마가 아쉬운 입장이 되면 안 된다. 가르치고 싶은 사람이 배우고 싶은 사람보다 앞장서면결코 흥정에서 이길 수 없다. 자녀 교육에도 밀당이 필요하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음악을 사랑하게 해주자
악기를 통해 아이의 감수성이 풍부하고 독립적 인격체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음악을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악기를 배우면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내가 음악을 좋아해야 그 음악을 표현해보고 싶어 하고 악기를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세요. 연주 기술을 익히기 전에 먼저 즐겁게 음악을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순간 아이가 느끼는 감정입니다. 음악이 즐거운 것임을 온몸으로 느끼면 그 음악을 표현하고 싶어 자연스럽게 악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시기가 와요. 음악을 듣고 느끼는 ‘흥’만 있어도 아이는 스스로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어요.”
김 교수는 음악으로 아이의 가슴을 채워주는 부모가 되라고 조언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가 자주 노래를 불러주고 음악도 들려주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도 “음악 들으면서 무슨 공부가 되냐”고 꾸짖는 경우가 흔하다. 아이가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듣고 싶어 한다면 가사가 없는 조용한 곡을 들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굳이 좋은 음악을 찾아 들려주려 애쓰지 않아도 돼요.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즐겁게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해요. 아이의 정서를 편안하게 하고 기분 좋은 감정을 유지해주거든요. 기분 좋게 들은 음악의 기억이 아이의 감성 또한 따뜻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음악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로 즐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김 교수. 그녀 역시 음악을 아이들의 평생 친구로 만들어주려 노력 중이다. 아이를 성장시키는 음악의 힘을 누구보다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불러보자. 음정과 리듬이 있는 노래를 부르면 부모도 아이도 기분이 좋아진다. 함께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른 긍정적인 경험은 아이의 인생에 풍요와 행복을 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