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를 거치면서 아이들은 점점 사회적으로 노출되어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또래관계로 이어진다. 본격적인 인간관계가 시작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엄마와의 애착관계는 또래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다음 실험은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인간관계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려 준다.
<아기 성장 실험>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또래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Ⅰ
실험은 대전 모 초등학교 1학년 중 한 반을 선택해 그중 8명을 무작위로 골라 부모와의 애착관계를 검사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 결과 5명은 안정애착이었고, 3명은 불안정애착이었다. 그런 다음 반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내 생일에 친한 친구 세 사람을 데려올 수 있다면 누구를 데려오고 싶은가?’
설문조사 결과, 놀랍게도 안정애착아 5명은 많게는 7명에서 적게는 4명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불안정애착아 3명은 모두 단 한 명에게도 초대를 받지 못했다.
같은 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도 똑같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결과, 2~3명에게 초대받은 아이들이 가장 많았고, 무려 12명으로부터 초대받은 아이도 있었다. 반면 단 한 명에게도 초대받지 못한 아이도 5명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아이들 모두 불안정애착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영유아기 때 만들어진 엄마와의 애착의 질이 인간관계 형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
성균관대학교 노경선 교수는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 아이들이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어 가는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 아기들은 다른 사람을 봐도 우리 엄마처럼 좋은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있어도 불안해하지 않고, 기대를 합니다. 이러한 경험이 수백만 번 반복되는 동안 아기의 성격은 아주 편안한 사람, 남을 믿을 수 있는 사람, 남하고 잘 지낼 수 있는 사람, 또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기댈 줄 알고 남이 필요로 하면 그 요구를 받아 줄 줄도 아는 사람이 됩니다. 대인관계능력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하는 원만한 성격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이외에도 미네소타 대학교 앨런 쓰루페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 또한 애착이 인간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아기 성장 실험>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또래관계 어떤 영향을 미칠까? Ⅱ
연구팀은 생후 15개월 된 아기의 애착유형을 측정한 후, 아기가 3.5세가 되었을 때 유아원에서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15개월 때 안정애착을 보였던 아기들은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은 물론 다른 아이의 욕구와 감정에도 민감하게 반응했을 뿐만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하는 놀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때문인지 또래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반면 15개월 때 불안정애착을 보였던 아기들은 또래 아이들과 제대로 감정을 나눌 줄 몰랐다. 놀이에 참여하기 하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빈도가 높았고 아예 혼자 놀려고 하는 경우도 있어 또래들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이처럼 아기의 폭넓고 원만한 인간관계는 바로 엄마와의 애착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안정적인 엄마와의 애착관계는 인간관계는 물론 학습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엄마와의 안정된 애착을 맺은 아기는 엄마를 안전기지 삼아 세상을 능동적으로 탐색하기 때문에 지적 발달은 물론 학습능력에 이르기까지 빠른 향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는 아기에게 엄마는 안전한 기초 기지와 같다. 앞서 보여진 ‘낯선 상황 실험’ 결과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은 생후 12개월이 된 아기 50명을 낯선 장소에 두고 엄마가 있을 때와 없을 때, 그리고 낯선 사람과 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아기들은 엄마가 있을 때 가장 많이 주변을 탐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탐색욕구는 아기의 지적 발달을 돕고, 지적 발달의 결과는 학습능력의 향상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는 아기에게 엄마는 안전하고 든든한 기초 기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안정애착아에게는 엄마처럼 다른 사람들도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 거란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은 넘치는 자신감과 왕성한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과의 관계에 무리가 없으며, 수업에도 자발적이고 열정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학업성적 또한 좋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안정애착을 가진 초등학생들이 전반적으로 학업성적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엄마가 세상을 탐색하기 위한 안전기지가 되주지 못하는 불안정애착아들의 경우는 탐색욕구는 물론 지적 발달이 더디고, 호기심이나 학습 흥미도에서도 안정애착아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당연히 학업성적에서도 낮은 성취도를 나타냈다.
이처럼 안정애착아가 지닌 장점은 불안정애착아에 비해 월등히 많다. 생후 1년 동안 엄마가 아기에게 만들어 준 ‘애착’이란 선물은 아기가 어른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안정애착아들이 지닌 강점을 들여다보면, 학습능력보다도 더 밀접한 연관을 보이는 영역이 있다. 바로 리더십이다.
앨런 쓰루페 교수는 학습능력은 애착과 간접적인 연관이 있을 뿐이지만 리더십은 보다 직접적으로 애착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어떤 근거에서였을까? 이어지는 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애착의 질과 리더십의 관계를 살펴보는 데 아주 유용한 자료가 된다.
<아기 성장 실험> 애착의 질과 리더십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먼저 아이들의 애착유형을 측정하기 위해 몇 가지 검사를 실시했다. 우선 아이들에게 가족 그림을 그리게 했다. 가족 그림은 현재 아이의 감정 상태는 물론 아이의 애착유형을 추측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그림으로 표현된 가족들의 표정이나 움직임 등을 보면 아이의 애착 유형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모든 가족들이 밝은 표정으로 웃는 그림도 있었고, 엄마와 아빠, 동생은 웃고 있는데 아이 자신만 화를 내고 있는 그림도 있었다. 그 밖에 엄마와 아이는 웃고 있는데 아빠만 화를 내는 그림, 몸통은 빼고 가족의 얼굴만 그린 그림, 가족 중 누군가가 빠져 있는 그림도 있었다.
대개 안정애착아의 가족 그림을 보면 가족 구성원들이 적당한 크기에 좋은 표정, 개, 꽃, 나비 등 그림을 밝게 만드는 요소들이 함께 그려져 있다. 반면 불안정애착아가 그린 그림은 다른 신체 부분은 빼고 가족의 얼굴만 그려져 있거나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애착관계가 좋을수록 밝고 기분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가족 그림 그리기 외에도 부모와의 애착 정도, 자아존중감, 친구들 사이에서의 인기도 등을 검사한 결과를 종합해 아이들의 애착 유형을 측정했다. 그 결과, 총 33명의 아이들 중 안정애착아는 17명, 불안정애착아는 12명, 애착 유형을 구분하기 어려운 아이는 4명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의 애착 유형을 파악한 후, 안정애착아와 불안정애착아가 골고루 섞이도록 3,4명씩 짝을 지워 모두 10개 팀으로 나누고, 각 팀마다 5만 원을 지급했다. 그리고 팀의 리더를 뽑아 5만 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회의해서 발표하라는 미션을 주었다. 이때 리더로 뽑힌 사람에게는 발표에서부터 집행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책임을 부여했고, 돈을 사용하는 방법에도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팀원끼리 돈을 나눠 가질 수 없고, 팀 전체를 위해 사용해야 하며, 사용 용도에 대해서도 팀원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도록 한 것이다.
이 실험에서 주목한 점은 누가 리더에 뽑히고, 그들이 어떤 애착 유형을 가지고 있는가였다. 각 팀의 대표로 뽑힌 10명의 아이들의 애착 유형을 살펴본 결과, 놀랍게도 애착 유형을 구별하기 애매한 아이들 3명을 빼고는 안정애착아는 6명, 불안정애착아는 1명이었다. 그러니까 안정애착아는 전체 17명 중 6명이 리더로 뽑힌 반면, 불안정애착아는 전체 12명 중에서 단 1명만이 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
이는 애착의 질과 리더십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안정애착아가 불안정애착아보다 리더가 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구성원의 입장을 잘 조정하고 이에 따라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적절히 조절하며 목적한 바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을 리더라고 본다면, 이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은 불안정애착아보다 안정애착아의 성향에 더 가깝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안정애착아들의 어떤 점이 리더가 될 확률을 높이는 걸까? 앨런 쓰루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안정애착아들은 어떤 문제가 주어지면 ‘어떤 식으로 풀까?’하고 생각합니다. 결코 ‘난 이 문제를 풀 수 없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항상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엄마와의 사이에서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 엄마와 상호작용을 하는 기술을 익혔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말도 잘 들어주고, 자신의 의견도 표현할 줄 알며, 또 자신과 타인의 의견을 조정할 줄도 압니다. 의사소통과 타협을 잘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러한 태도와 기술을 가진 아이는 또래 집단 속에서 당연히 리더가 됩니다. 다른 아이들도 안정애착아의 이러한 특성을 인식하기 때문에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라 믿고 그 아이가 리더가 되어 지도력을 발휘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확률의 문제이다. 안정애착을 형성한 아기들이 불안정애착아보다 커서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리더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일 뿐이다. 하지만 생후 1년 동안 맺은 애착의 질에 따라 내 아기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면, 달라질 가능성이 그토록 크다면,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아기와 엄마와의 애착의 질에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