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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교육아들 교육법 : 아들은 대체 왜 이렇게 싸우는 걸까?

아들 교육법 : 아들은 대체 왜 이렇게 싸우는 걸까?
대체 왜 이렇게 싸우는 걸까?
“어머나! 어떻게 된 일이니? 싸웠어?”
엄마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턱이 부어 있었고 멱살잡이를 했는지 목에도 긁힌 상처가 보였다.
“M이랑 싸웠어. 나쁜 자식.”
아들이 분하다는 듯 말했다. M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로 줄곧 붙어 다니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런데 주먹질까지 하면서 싸우다니. 엄마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화를 꾹 눌러 참았다. 마침 얼마 전에 자녀교육서에서 읽었던 대목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친구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부모는 먼저 아이의 마음을 진정시킨 뒤 갈등이 일어난 원인을 아이와 함께 분석해보고, 각자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를 냉정하게 분별한 뒤 아이 스스로 합리적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억울해서 분한 아이에게 ‘네 잘못은 이렇고 저렇고’를 따지는 것은 아이 귀에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화만 더 부추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엄마가 아이의 마음을 진정시킨 뒤에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별일도 아닌 시비가 발단이었다. M이 싸움을 도발했다는 것이 아이의 주장이었으나 왜 그랬는지 하나씩 따지다보니까 쏙 빼놓았던 아이의 잘못도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답답해서 따져 물었다.
“그러면 M이 고의로 그랬던 게 아니었잖아?”
아이는 엄마의 날카로운 질문에 딴소리를 하며 억울해했다.
“나쁜 놈이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줬는데.”
엄마는 예전의 경험을 상기시켜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전에 M네 집에 놀러 갔다가 도자기 인형을 깼을 때 M의 부모님이 너한테 어떻게 대해줬니? 용서해주셨잖아. 그렇지? 네 말대로 M이 더 나쁘다고 해도 이번에는 네가 용서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이는 잠깐 입을 다물고 있더니 잠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착한 아들을 안아주면서 격려해주었다. 친구의 잘못과 단점에 대해 너그러울 수 있는 아이는 그만큼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아직 어린아이일지라도 누군가를 용서하는 경험은 정신적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자아이에게는 싸움도 어울림의 방식이다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왜 그렇게 자주 싸우느냐’는 점이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남자아이들의 세계에는 ‘사이좋게’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주 어울린다 싶으면 금방 돌변해 몸싸움을 벌이고 주먹을 휘두른다. 여자아이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면서 사이좋게 어울리는방식과는 극단적으로 다르다.
학자들은 이런 차이를 오랜 진화 과정에 따른 것이라고 풀이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여성은 열매를 채집하고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언어소통 능력을 개발해온 반면, 남성은 사냥과 전쟁을 통해 웬만한 것은 힘으로 해결하려는 습성을 지니게 되었다. 수만 년 이상 굳어진 습성이 오늘날까지도 무의식에 남아 남자와 여자의 행동에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헌데 묘하게도 여자아이들이 누군가를 싫어하면 지속적으로 거리감을 두는 데 비해 남자아이들에게는 미운 감정이 일시적이다. 남자아이들은 물리적인 다툼을 통해 미운 감정을 대부분 해소하므로, 나이가 들면서 좋거나 싫은 감정보다 점차 필요에 의한 관계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아이들은 기질적으로 잘 통하며 무리 속에서 도움이 될 경우 서로를 ‘괜찮은 녀석’으로 분류해 절친한 친구가 된다. 그런데 이런 사이는 다정한 대화와 친밀감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도발하고 티격태격 다투면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둘도 없는 친구’로 서로를 마주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갈등과 다툼을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남자아이는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 눈을 뜬다. 수많은 싸움을 겪은 뒤에야 아이는 일방적이고 난폭한 태도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싸움을 통해 대인 관계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함께 배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른들의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는 말씀에는 일리가 있는 셈이다. 이런 점 때문에 사내아이를 키우는 것이 여자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훨씬 힘들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남을 용서하는 마음을 함께 가질 수 있다면
관용은 아들을 크게 키우는 마음 비타민이다. 남을 용서하는 경험은 남자아이의 인격 형성에 매우 특별한 작용을 한다. 평생 동안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남을 용서하는 것은 곧 나를 용서하는 일이고, 누군가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기회를 준다는 뜻이다.
아이는 남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기중심성 혹은 이기심을 극복하게 된다. 그 결과 더욱 진정성 있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사회 적응 능력과 협동 정신도 높아진다. 인내심은 물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도 기를 수 있다.
관용 없이는 큰 사람이 되기 어렵다. 넓은 마음으로 자신과 다른 이를 수용할 줄 아는 아이가 장차 많은 사람에게 환영받는다. 적을 만나도 금방 친구가 될 정도의 관용을 지닌 남자만이 무한경쟁 사회에서도 자기 앞길을 열고 나아갈 수 있다. 많은 사람을 품에 안을 수 있어야 그만큼 많은 사람을 이길 수도 있다.
관용은 또한 일종의 경지이기도 하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관용은 아량일 뿐 아니라 문명의 경지이다. 관용은 다른 사람을 끌어안는 품이다. 인간은 그 품으로 생명의 아름다움을 창조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 남자로 자라려면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많이 어울릴 필요가 있다. 아이는 자기와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들 과 어울림으로써 이질감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원만한 성격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만들어 지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엄마 역시 스스로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아들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엄마가 솔선수범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아이 앞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며 험담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틈틈이 돌이켜보아야 한다.
아들을 크게 키우는 엄마는 아이를 가르치기에 앞서 스스로가 관용을 베풀 줄 안다. 엄마 자신의 삶을 만족스럽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마음의 매듭을 수시로 푸는 지혜를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편해야 아이도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출처위즈덤하우스 - 엄마는 아들을 너무 모른다